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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기억증후군/이미산

기호의 순수 2023. 1. 23. 15:30

  과잉기억증후군

 

  이미산

 

 

 

  나의 스폰지 같은 아버지와

  나의 엄마의 돌덩이 같은 남편이

  한 그루 나무로 서 있다. 흔들리면 두 개의 풍경화가 펼쳐진다.

 

  한숨도 못 잤다 네 애비가 던진 돌멩이 때문에!

 

  깨트려 길을 내는 엄마의 쇄빙선

  멀찍이 보면 더할 나위없는 평화, 가까이 가면 열정적인 길의 파괴, 피 흘리는

조각들로 재조립하는 생의 방식

 

  유독 고단한 날은 혼자서도 절정을 맞이하는

 

  그곳에 닿는지, 숙성된 독설에서 흘러나오는 뜬금없이 뼈대 있는 집안의 지순한

지어미, 정갈한 밥상과 무탈을 기원하는 반지르르한 장독대, 기꺼이 용서의 향기라

불러주면 잠꼬대는 극락에서 파견된 새처럼 사랑스러운데 영영 허구라 불릴 이

지점에서 나는 막 행복해지는데

 

  짧은 인생 웃고 살아요, 불쑥 날아온 돌멩이에 입을 막고 웃는 이파리들, 백년 후에나

가능할 엄마의 농담은 사랑과 멜랑콜리의 야반도주로 시작되는 남자와 여자, 원망과

후회가 끈질기게 추격하는 무용담, 부뚜막에 꽃이 필 때까지 지속될 환상과 우울의

이중주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보는 마음 따라 변명과 화해와 용서로 흔들린다. 오뉴월 서리 녹아 강물이

되는 날까지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소 목 놓아 부르는 후회가 돌덩이를 옮길 때까지

 

  저녁노을에 누운 녹슨 쇄빙선

  엄마, 또 나와 계세요? 안락한 무덤으로 그만 돌아가세요.

 

                       반연간지<시인들> 2023년 봄호

 

 

  시작노트:

  세상의 엄마들은 두 개의 풍경을 그리며 산다. 여자이며 엄마인 동시적 역할은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그 사이에 한 남자이자 남편을 세워놓으면 균형은 안정적인데 마음은 이상하게

불균형이다. 내 어머니가 그러했고 나 또한 그렇다. 그리하여 외로운 목을 늘려 삼각형 바깥

으로 삐져나온다. 그 초라한 곳에 나의 시 쓰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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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잉기억증후군

 

 

 

  스폰지 같은 아버지와

  돌덩이 같은 엄마의 남편이

  한 그루 나무로 서 있다

 

  흔들리는 두 개의 풍경화

 

  한숨도 못 잤다 네 애비가 던진 돌멩이 때문에!

 

  엄마는 깨트려 길을 내는 쇄빙선

  멀리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평화 가까이 가면 열정적인

  파편들의 재조립

 

  고단한 날은 혼자서도 절정을 맞이하는

 

  엄마는 뜬금없이 흘러나오는

  뼈대 있는 집안의 지순한 지어미 정갈한 밥상과 무탈을 기원하는

  반지르르한 장독대 용서의 향기라 부르고 싶은 잠꼬대는

  방금 극락에서 파견된 새처럼 사랑스러운데

 

  영영 허구라 불릴 이 지점에서

  나는 막 행복해지려는데

 

  짧은 인생 늘 웃고 살아야지

  불쑥 날아온 돌멩이에 입을 막고 웃는 잎사귀들

  백 년 후에나 가능할 엄마의 농담은 사랑과 멜랑콜리의

  분리로 시작되는 남자와 여자 원망과 후회가 끈질기게

  추격하는 무용담 부뚜막에 꽃이 필 때까지 지속될

  환상과 우울의 이중주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서

 

  변하는 마음 따라 화해와 용서로 흔들린다

  오뉴월 서리 녹아 강물이 되는 날까지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소 목 놓아 부를

  후회의 돌멩이가 쌓이고

 

  저녁노을에 나앉은 기우뚱 쇄빙선

 

  또 나오셨네요

  두 분의 안락한 어둠 속으로

  그만 들어가세요

               계간<시와함께> 2023년 여름호 기발표작 수록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