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1968년 진달래꽃/이미산
기호의 순수
2022. 2. 15. 10:33
1968년 진달래꽃
부뚜막에 앉으면 갈증이 났다 찬장 속엔 늘 아버지를 위해 준비된 막걸리가 있었다
마시면 세상을 다 가진 아버지가 된다
부뚜막이 흘러간다
살금살금 열 살
기울어지는 대낮
훔쳐본 엄마의 무겁고 무서운 고요
놀란 내가 켜켜이 쌓이는 그곳이 오래 전에 준비된 나의 미래인 것처럼
명명할 수 없는 익숙함으로
슬픔이라 부르면 뒷걸음질 치는 여자
날마다 삶아내도 싱싱하게 자라는 수십 개의 길 수백 개의 찡그림 수만 개의 물음표
언제 화살이 될지 모르는 다정한 음성
습관처럼 엎드리는 부뚜막
으스름 잔뜩 껴입은 대낮이 건들건들 불러본다 헤이 아버지!
기울어지는 열 살
누군가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미래 꿈밖으로 외출했다 급히 돌아가는 붉음의 뒷모습
꽃잎 하나 떼어 툭 던져준다 나의 나비는
무겁고 무서운 고요
웃는 엄마는 어디까지 왔나
내가 나를 호호 불어준다
잘 가라
또 한 잎
계간<포엠포엠>2021년겨울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