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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21. 10. 12. 00:15

달팽이

      이미산

 

 

 

우두커니 서서

불 켜진 창문을 본다

 

아랫배의 힘을 당겨 피워 올리는

웃음소리

고함소리

달그락거리는 세간

 

불가능한 말로 부어오른 내 목젖은

산 자들의 모서리

밤새운 기침 간신히 잠재우고 바라보는 새벽, 그때

내려앉는 무거운 평화

 

수없이 오고 간 이 길이 왈칵 뜨거운데

겹겹으로 쌓인 내 발자국들 나를 모르고

 

내 손등에 놀던 모기들 나를 모르고

마흔도 못 채운 당신 보낼 수 없다며 하염없이 울던 당신

나를 모르고

 

팽창과 수축 반복하며 늘 혼자인 고요처럼

갈잎 한 장 흔들 수 없는 내 사소함처럼

 

저녁이 잠들면 깨어나는 죽은 자들의 새벽

우리의 인사는 돌아앉는 자세로 충분하겠지

 

다녀가는 창문에 느릿느릿 새겨지는 물기

 

        계간 <포엠포엠> 2021년 겨울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