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여인숙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21. 6. 1. 13:57
여인숙
이미산
기적이 울리면
나도 모르게 아랫배에 힘을 줬어
멀어지는 서울
친구는 자취방에 없었어
고향에 갔다우, 주인할머니는
고향에서 멀리 온 목소리였고
간판이 고향을 닮아가는
낡은 집이었어
외풍에 코끝이 시렸지만 이불 속은
와락 뜨거웠고
부러진 나를 눕히고
혼자라는 사실을 온몸에 새길 때
희미한 별들이
낯선 벽에서
손을 흔들었지만
감은 눈 자꾸 떠 보는 방
홀로 미라가 되어도 좋을 방
순간에 만년설이 사라져버린 산봉우리 같은 방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에 그를 입히며
평온해지는 연습을 했어
달라붙는 얼굴을 떼어내
개 짖는 쪽으로 던졌어
언제나 다정한 환幻이
민낯으로 내 상념의 구석구석을
닦아 주었어
어둠 속
방 하나가 울고 있었어
계간<시인정신> 2021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