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시집 <사막을 건넌 나비>
무거운 돌
박병수
그림자가 그림자를 받아주는
풍경처럼
두 사람이 다가왔다
역광이라 생각하면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겠지만 그림자가
젖어있다
그림자는 말리셔야겠습니다
불빛이 흔들리고 그림자가
그림자를 부축한다
세상은 젖어있고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
우리는 이 말들을 뒤적이며
‘불 탄 자리에도 풀들이
자란다면 좋겠어요’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
어깨 위는
내린 눈의 대지,
두 손으로 눈송이를 받으면서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
우리는 이 말들을 깔고 앉아
따뜻해진 돌멩이를 주워든다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 이 말들을
포갠 후에
돌을 눌러 놓는다
한 손은 재가 묻은 땅을 짚고
남은 손은 돌멩이의
묘혈처럼 움푹하다
박병수 시집 『사막을 건넌 나비』 중에서
인간은 꿈꾸는 者이면서 현실이라는 삶에 발을 딛고 산다. 현실은 어떤 사람에겐 어깨를 짓누르는 힘겨운 무게다. 더러는 그 무게의 지난함 때문에 현실 너머로 자꾸만 시선을 돌린다.
시집 속의 시들은 어둡다. 『사막을 건넌 나비』라는 시집 제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망에 휩싸여있다. 나비는 아직 사막을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이 시 또한 삶의 물기로 젖어있다. ‘그림자가 그림자를 받아주는 풍경’에서 위로하는 자와 위로받는 자라는 두 영혼으로 설정되었다. ‘역광이라 생각하면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에서 보듯 과거에는 한 사람이었다는 것인데, 이는 그림자로 분류되는 두 개의 자아 즉, 현실과 이상은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인생처럼 분리되었다는 거리감을 드러낸다. 화자는 현실과 꿈이라는, 한 명이면서 두 개의 자아를 고백한다. 그림자를 놓고 치유놀이를 하는 중이다. 놀이의 내용은 지친 현실의 독백이며 상처받은 영혼의 위무이며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이다.
‘그림자는 젖어’있다.
‘그림자를 말리’셔야겠습니다,
‘그림자를 부축’한다.
그림자 이미지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작은 목소리와 작은 몸짓이지만 위로의 포즈다. 현실과 꿈은 각자의 다른 방향으로 너무 멀리 왔다. 젖은 영혼을 말리고 싶지만 한 번 이탈된 궤도는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을 기도처럼 중얼거려보는 것. 격려이자 의지인 재기의 한 축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것.
‘불 탄 자리에도 풀들이 자란다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불 탄 자리에 다시 풀들이 자랄 것이라 당연히 믿는다. 그러나 ‘~좋겠어요’란 표현으로 미루어 화자는 이 믿음마저 흔들린다. 좌절을 오래 한 사람의 슬픔이 전해진다. 의욕조차도 바닥이 났을까. 재기하려는 의지가 흔들리는 촛불처럼 소심하다. 두 손으로 눈송이를 받으며 스스로 되뇌는 말은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 더는 놓치지 않게 몸의 일부가 되도록 깔고 앉아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 어쩌면 차라리 지상과 완전히 분리되어도 좋을 바로 그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
화자는 자신의 체온으로 따뜻해진 돌멩이를 ‘무거운 돌’이라 규정한다. 그리하여 유일한 희망인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의 중얼거림을 층층이 쌓는다. 무거운 돌로 눌러놓는다. 제목으로 놓인 ‘무거운 돌’은 새로운 결심으로 읽힌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불안한 마음을 비로소 풀 수 있다.
깃털은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것이다. 젖어 날지도 못하던 영혼이 가벼운 깃털이 되는 그때 시인은 어떤 모습일까. ‘돌멩이의 묘혈처럼 움푹’한 상처였다고, 웃으며 되돌아볼 환한 그날이 어서 오기를.
(이미산 시인)
계간 <시와 편견> 2020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