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이후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20. 2. 29. 12:02


 

이후

            이미산  


 

그때 나는

그리움은 먼 곳에서 온다고 믿었다

 

바람이 부려놓는 그곳의 냄새,

눈가에 드리우는 그곳의 실루엣,

 

모르는 당신이

내 몸에 찍는 발자국들,

 

그리하여 내 안으로 당신을 들인 그날

나는 눈물이 났다

 

우연이 우연의 옷자락에 닿아 오늘이라 불리듯

가까워도 닿을 수 없는 먼 곳이 있다

어디로든 손을 뻗어 긴 팔 키워내는

가려운 등도 있다

가장 먼 곳의 별빛으로 제 몸을 식히는 지구별처럼

 

한쪽 발을 물에 담그고 나의 전부를 생각했다

한 번의 외출이 탕진한 사라진 발자국들 불러보았다

당신이라는 눈물만이 또렷해지는 즈음

 

다시 오지 않는 그날과

다시 그리워할 수 없는 그곳 사이

 

눈물의 이후가 시작되었다

 

                계간 <모:든시> 202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