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반달낫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8. 6. 21. 11:24
반달낫
이미산
살을 파고드는 엄지발톱을 또 잘랐다 그것이
반달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낫이 보였다
낫질은 오래된 문명
너는 맛있는 풀이야, 그때 쓰러진
달빛은 우리의 식욕이었을까 지그시 바라보면 품이 그리워지는 이불 같은
그러나 흔해서 잊히기 쉬운 밤의 공기
부지런한 토끼는 자주 피곤하지
조금씩 자라는 귀는 달콤한 노래처럼 쫌 멋있지만
채우고 다시 허물어 완성시키지 않는 밤이란 걸
미리 알았더라면
성큼성큼과 살금살금으로 빚은
엘레지는 새로운 문명
달빛 때문이야, 너라는 가려움
긁고 또 긁어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가려움을 찾고 있지 그러나
처음 가렵거나 영영 밤이거나
그것뿐
가장 예뻤을
우리의 반달이 있을 뿐
발톱은 철없이 또 자랄 테니
격월간 <현대시학> 2018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