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사월의 눈/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8. 4. 23. 13:24

  사월의 눈

 

             이미산

 


 

  환호와 절망은 한몸이었나

  투신이 뭐에요? 피어나는 호기심과

  애써 주저앉히는 숨소리

 

  옥상 곳곳 발자국 속엔

  한결 같은 십자가의 자세

  하얗게 식어간 등이 시뻘건 결심으로 남겨질

  무렵 같은

 

  평범한 저녁이란

  어둠이 영원을 만나 빚어내는 무사와 감사

  혹은 그런 믿음으로

  등을 곧게 펴보는

 

  절벽이 되돌려주는 슬로우 모션

  수줍은 심장 칸칸이 숨긴

 

  한 방울의 물기와 흩어지는 순간과

  피었다 지는 단숨의 무지개들

 

  층층의 계단을 거슬러

  떨리는 보폭으로 완성하는

  마지막 인사 같은

 

  환호가 끝난 후 호명될

  또 한 줌의 절망 같은 

 

                               계간 <포엠포엠> 2018년 여름호




  *환호와 절망의 찰나 속으로

      -이미산 시인의 「사월의 눈」을 읽고



                                        글. 정다인 (2015년 <시사사>등단. 시집 『여자K』)



  꽃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생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꽃은

한정된 시간을 부여받은 채 피었다 지는 순환의 한 찰나를 담당하고 있

다. 눈처럼 날리는 꽃잎을 보면서 우리가 그토록 황홀해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름다움과 동시에 곷잎이 그리는 처연한 '투신' 때문은 아닐

까. 늘 저만큼 밀쳐두고 사는 우리 생의 유한삼을 문득 깨닫게 하는 곷의

'투신' 에 우리의 시간을 대입해보는 것이다. 화르르 피었다 화르르 지는

꽃의 은유 속으로 우리가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것은 그 속에 우리 자신

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지고 있는 꽃잎을 머리에 이고 해마다 봄을 떠

나보내는 우리 모두의 꽃의 찰나이며, 시간의 한 모서리이다. 그 속에서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화자는 어디쯤에서 온 우리 자신일까? 사라

져버린 우리들의 봄날을 향해 슬픈 손짓을 보내고 있는 시 속에는 아직도

꽃잎이 화르르 흩날리고 있다.


  '환호와 절망은 한몸이었나/투신이 뭐에요? 피어나는 호기심과 애써 주

저앉히는 숨소리'


  이 시의 첫 소절에는 우리 생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환호와 절

망' 전혀 다른 주파수의 단어이지만 우리의 시간 속에는 이 두 단어가 동

시에 작동하고 있다. 우리 생의 단면은 전혀 다른 상황이 복잡하게 맞물

려 삶과 죽음의 변주를 끝없이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곷의 생애는 이런 

우리 생의 단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오마주이다. 죽음의 찰나조차 처연

히 보여주는 꽃의 '투신' 에서 화자는 우리 생의 마지막을 보고 있다. 지

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꽃처럼 투신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사라짐의 시간을 우리에게 끌어오고 있다.


  '평범한 저녁이란/어둠이 영원을 만나 빚어내는 무사와 감사/혹은 그런

믿음으로/등을 곧게 펴보는//절벽이 되돌려주는 슬로우 모션/ 수줍은 심

장 칸칸이 숨긴//한 방울의 물기와 흩어지는 순간과/피었다 지는 단숨의

무지개들'


  우리의 일상은 깨지기 쉬운 유리막으로 덮여있다. 견고해 보이는 일상

의 표면은 생각보다 여리고 약하다. 유리막 속에서 우리는 불안과 안도가

교차되는 '평범한 저녁' 을 맞이하는 것이다. 꽃이 피어있는 동안의 안온

함처럼 그것은 눈치 채지 못하게 서서히 사라짐을 향해서 가고 있다. 다

만 우리는 그것을 모른 채 혹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눈 감은 시간

이 우리 앞에 흘러가고 있다. '무사와 감사' 가 교차하는 시간을 우리는

'평범한 저녁' 이라고 이야기 한다. 낙하의 절벽을 앞에 두고도 우리는 조

용히 '무사와 감사' 를 얹어 한 끼 밥을 넘기는 것이다. 꽃의 만개가 곧 낙

하인 것처럼 우리들의 시간은 '절벽' 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 앞에 '절

벽'이 있기 때문에 어둠이 내리는 '평범한 저녁' 이 더 감사하고 평안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의 일상을 화자가 '피었다 지는 단숨의 무지개들' 이

라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일상은 흩날리면사 사라지고 흩날리는 일

상을 살아내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다.


  우리가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을 화자는 붙잡고 있다. 떨어지기 직전의

꽃잎을 붙잡고 있는 가지의 안간힘처럼 화자는 우리의 마지막을 꼭 붙잡

고 보여준다. '환호' 와 '절망' 이 교차하는 우리의 시간은 지금도 아무렇

지도 않게 흘러가고 있다. 평범한 하루가 지나가는 것은 꽃의 숨을 한 번

호흡한 것이다. 사라짐의 매혹 속에서 우리는 또 한 나절 우리의 사라짐

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꽃이 지는 찰나의 의미

를. 화자가 '떨리는 보폭' 으로 '층층의 계단' 을 올라가서 내려다 본 '절

벽' 이 우리의 시간이라는 것을.


  절벽 앞에 선 우리는 또 그 절벽 앞에서 천천히 '슬로우 모션'으로 피

고 아물고 사라져간다.



                                    계간 『포엠포엠』2018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