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및 리뷰

시집 속의 시 읽기 /신명옥 시집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7. 2. 21. 08:42

 

머플러라고 부르는 새

 

 

 

오랫동안 나를 아프게 쪼아대던 새에게

머플러란 이름을 붙였다

그것을 잘 접어서 상자 속에 담고

뚜껑 꼭 덮었다

그것은 한동안 머플러로 있었다

머플러라고 부르는 동안

나는 새를 잊고 지냈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뚜껑 들썩거리며 푸드덕거렸다

 

 

빠져나가려는 깃을 쑤셔 넣을수록

내 삶은 점점 숨이 막혔고

나는 숨 쉬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끼어 있는

새를 꺼내기로 했다

뚜껑 열자 회오리바람 타고 솟구친다

허공 휘저으며 춤을 추는 머플러

점점 작은 새가 되어 능선 너머로 사라진다

 

 

머플러를 상자에 접어넣는 것이

나를 가두는 일이란 것을 알았다

새를 날려 보낸 금강 하구

고요해진 호흡 속으로

푸른 공중 날고 있는 내가 보인다

 

 

                                  신명옥 시집 『해저 스크린』

 

 

 

  머플러는 시적화자의 욕망으로 읽힌다. 새는 날개를 활짝 펴고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세상의 속살을

여닫는 기저물이다. 바람과 함께라면 더없이 황홀한 상상여행이 될 것이다.

 

 

  욕망은 그 실현여부와 상관없이 발생된다. 그러므로 욕망과 실현 사이엔 필연적으로 갈등이 존재하

며, 갈등은 타협을 통해 실현의 여지를 타진한다. 욕망의 주인인 나는 ‘삶’이라는 범위에서 다시 관습

과 역할의 ‘틀’ 속에 존재하는데, 틀이란 여기서 새를 가둔 ’상자‘에 다름 아니다. 욕망의 정체는 분명하

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잘 접어’ 보관한 것으로 보아 유보된 욕망이라 하겠다. ‘머플러’엔 외출에 대

한 기대가 숨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미래의 아름다운 비상을 위해 현실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새’는 공간의 어디든 누비는 속성을 지녔기에 상자라는 폐쇄와 어둠과 외로움의 거처가 훨씬 고통스

러울 것이다. 여기서 움직이는 자아를 정지의 공간에 가두는 설정은 일종의 타협으로, 불가능한 욕망

을 견디는 자기최면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불구의 현실에서 새는 희미한 바람소리에도 거칠게 반응

한다. 창공에서 빛나야 할 욕망이 감금이라는 지경에 처했으니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갈등의 수위는

매우 높다. 스스로 채운 족쇄이기에 스스로 벗어나야하는 당위성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상자속 호흡법을 연습하거나 적응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는 맘껏 날아다닐 때

새인 것이다. 이는 삶이라는 틀 속에서 누구나 부딪치는 문제인데, 답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본질에 충

실할 것. 새는 새의 세상으로 머플러는 머플러의 그곳으로.

 

 

  이쯤에서 새는 詩를 욕망하는 시인이라 하자. 불안과 고독을 찢고 과감히 날아올랐던, 그 순간순간의

날갯짓이 여기 첫 시집으로 상재되었다. 고단한 새의 지저귐은 무수히 나타나고 무심히 스쳐간다. 다만

누군가 귀를 열어줄 때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오랫동안 곁에 머문다.

 

                                                                                                       (이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