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그리마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7. 1. 16. 16:40
그리마
이미산
잘 살아,
당신이 어깨를 쭉 펴고 씩씩하게 돌아설 때
서른 개의 마음을 보았지
옆구리에서 가슴에서
들썩이는 백 개 천 개의 다리를 보았지
수많은 유머 중에
우리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어여쁜 소용돌이
다리는 매끄러울수록 매력적이겠지만
그리하여 두 쌍의 울퉁불퉁한 다리여 안녕
손등 위에 손등을 포개 두려움이라 호명한
아슬아슬한 약속이여 안녕
약속은 허구의 질감이었으니
음파를 헤치고 지구궤도를 돌고 또 돌아
서로의 비밀을 훔쳐 서로의 귓속에 키워낸
미망의 꽃이었으니
사랑이여 마침내 안녕
최초의 안녕을 완성해야지
닿지 못한 당신의 다리와 착각보다 힘이 센 착란의 미래와
천개 만개로 부활하는 안녕과
다리에 관한 패러디 하나가 나를 선택했으니
마음에 관한 비애 하나가 나를 구애했으니
<웹진 시인광장> 2017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