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및 리뷰

김휴 시집 『물을 연습 중이다』리뷰

기호의 순수 2016. 4. 26. 14:34

 

  엄마의 첫날밤은 얼마나 푸르렀을까

                                                          김 휴

 

  나비처럼 잠든 가여운 밤이 얼마나 많았는지 물어보았지만 엄마는 곤충의 도감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밤마다

깊은 강을 건너오다가 악어의 거친 입속에 알을 낳은 여자가 유일한 곤충이었다

 

  눈을 감으면 관계의 끝이었던가

 

  그 무렵 저질러진 사건이었을지도 모르지 수없이 뛰쳐나오는 맨발들, 입을 틀어막아야 하는 겨울별자리, 마지막

장면은 무조건 얼어 죽는 벌판이었다 숨죽이고 기어 다니는 음률에서

 

  엄마는 죽은 나비의 살코기를 다지고 있었고

 

  차라리 내 붉은 간을 엄마에게 내놓을게요

 

  호텔캘리포니아로 도망가요 거긴 결코 들키지 않을 불륜이든지 아니면 감쪽같은 몸의 지옥일거야 우린, 우리가

꾸며놓은 의식에서 노예가 되어 버리고 채찍을 맞으며 기뻐하기로 해요

 

  첫날밤은 당연한 의심, 눈부신 핏줄이 그물처럼 엮인 잠자리는 아직도 애벌레 상태, 나쁜 남자야 겨울나무의 알몸

은 기어오르면 안 되는 거야 무의미해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비명을 지르는 별자리는 새벽에 죽어나간 상반신이었

을까 배가 불러오던 여자를 뜯어먹은 벌레의 몽롱한 자세를 세상에 없는 별자리라 생각하면 방금 문자가 도착한다

 

  이제 옷을 입혀줘요 당신의 지문을 따라 흐르는 강이 너무 깊어요 살과 살이 닿는 자리마다 꽃이 죽어요

 

  알을 품고 다니던 엄마는 더 모욕적이었고 맨발로 돌아다니는 엄마는 추상적이라서 마주치는 엄마마다 도망친다

 

  때려죽여도, 없었던 첫날밤을 보여 달라며

  유리병보다 더 투명한 치마를 입혀주었다

                                                            김휴 시집『물을 연습 중이다』에서

 

  엄마의 첫날밤 상상은 불온하다. 그러나 누구나 한번쯤 그 불온의 늪에서 헤맨 적 있으리라. 엄마는 생명의 시작

지점이고 '나'라는 존재의 최초증명이니 '엄마'하고 부르는 순간 둘러쳐진 보호막에 대해 드리워진 평온에 대해 어

떤 설명이 합당할까.

  여기 아들의 불온한 상상에 갇힌 엄마가 있다.

 

  시집의 상당부분이 엄마와의 불온한 관계성으로 채워졌다. 시인의 감성체계가 자못 궁금해지는 이유다. 중년기를

벗어나는 시점에서 첫 시집의 콘셉트를 엄마로 잡은 이유엔 어떤 절실함이 존재하는지. 시인은 엄마를 일찍 여의었

다니 결핍의 자리가 무의식의 바탕을 이루며 생존의 고투 아래 가라앉아 있었으리라.

 

  시인은 지금 육체적 고통에 처해있다. 약해진 심장과 싸우는 중이다. 시집의 원고교정 중에도 반란하는 심장과 씨

름했다고 전해 들었다. 나이를 먹어도 아프면 엄마를 찾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니 결핍의 무의식과 생명의 한계상황

이 만나는 지점에 아들과 엄마가 있다. 병마 앞에서 느꼈을 공포와 의지하고픈 욕구 앞에서 엄마는 유용한 피난처일

것이다. 한 편의 시를 끌고 가는 엄마, 시집 한 권의 중심에 앉아있는 엄마, 시인의 삶을 지배하는 엄마는 결핍 너머의

분명한 무엇이리라.

 

  육체적 고통에 처한 시인의 암담함이 마음에 걸린다.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에 대항하는, 삶을 향한 애착의 결과

물로 읽히는 이유이다. 섬망의 상태까지 나아간 듯한 독특한 상상은 때때로 섬뜩하다. 시인은 그리움과 결핍의 허울

을 벗어던지고 무의식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간다. 나만을 사랑하는 엄마,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엄마, 나의 소유로서

의 엄마!

 

  죽어도 죽지 않은 엄마와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아들이 상통하는 지점은 서로의 (가여운) 생명성이다. '죽은 나비의

살코기를 다지'는 엄마는 아들의 살점을 다지는 가혹한 운명에 다름 아니다. '때려 죽여도, 없었던 첫날밤을 보여 달라

며/유리병보다 더 투명한 치마를 입혀주'는 아픈 아들이란 엄마를 향한 영원한 순결성 혹은 신을 향한 간절함의 극치

이리라.

 

  다시 봄이 왔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이 어느새 사라졌다. 황홀의 순간은 짧다. 시퍼렇게 잎을 틔워 삶의 바다를 건너

야할 지난한 시간이 기다린다. '호텔캘리포니아로 도망가'자고 한 아들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몸은 고통일지라

도 엄마와 함께라면 채찍을 맞으며 기꺼이 기뻐할 수 있다는 아들의 유토피아! 존재는 유한성으로 하여 애틋하고 고통으

로 하여 아름다운 슬픔이다.

 

  세상의 모든 곳에 신을 보낼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다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어머니는 어머니를 넘어 존엄한 실존의

연장선상이다. 이 시집은 시인의 열망으로 채워진 우울한 고백이다. 하지만 시인이여, 일탈의 심장이여, 소소한 일상으

로 그만 돌아오시길. 열병 속에서 만났을 삶의 비의를 어서 전해 주시길. 치열과 순조가 동일하게 시인의 새로운 바탕으

로 거듭나시길.

                                                              -이미산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6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