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아네모네/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5. 11. 11. 19:25
아네모네
이미산
고모가 자꾸 웃었다
낯선 숨을 밀어내듯 웃음이 새어나왔다
흔들리는 꽃은 얼마나 먼 곳의 울음인지
지중해 어디쯤 아네모네 무더기로 피어나는지
입 없는 말들이
시들기 전엔 오므릴 수 없는 말의 체위가
굴러다닌다 하늘거리는 웃음
배신당한 사랑이래
죽어도 기다리는 사랑이래
어둠이 조금씩 뜨거워졌다
개들이 웃음을 핥으며 끙끙거렸다
가로등 아래 벌거벗은 구름이 웅크리고 누웠다
발길에 차이는 꽃잎들
그때 꽃잎은 유난히 붉어
동물의 눈빛처럼 사납다
월간 <시와표현>, 2015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