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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5. 7. 20. 00:45

 

  그곳

 

              이미산

 

 

  명절이 되면 서울에서 귀향한 언니의 신경질과 욕설에 강아지도 마루

밑에 숨었다 변한 게 없는 동생들 아버지의 굽은 어깨 그림자 같은 엄마

감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도 성가시니 당장 베라고

 

  서울을 짊어지고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 다시 버스 덜컹거림으로 도착

한 언니와 호롱불 앞에 둘러앉은 가족들 서울냄새인지 화장냄새인지 모

를 무엇이 아버지의 침묵에 균열을 내며 앞산 능선을 지나는 구름의 그

림자보다 거대한 몸집으로 내려앉았다 비음의 말투와 크레파스빛깔의

손톱이 섬뜩하도록 예뻤다 본 적 없는 서울을 어떻게 환영해야 할지 낮

은 지붕도 늙은 마당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울이 휩쓸고 간 집은 추수의 끝물보다 적막했다 서울이 놓고 간 선물

은 다시 포장되어 내 금증의 해답인양 난류의 포즈로 빛났다 손이 닿기

엔 너무 멀고 아득한 서울 위로 겨울의 햇살이 살금살금 내려앉았다 어떻

게 하면 서울의 뒤태라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꿈속의 발가락을 세워 키를

늘리기 시작했다

 

                                  계간 <다시올 문학>, 201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