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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관의 노래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5. 2. 10. 12:25

 

배관의 노래

                              이미산

 

  

아파트 배관을 통과하는 물소리 경쾌하다

 

바깥의 소음에 차오르는 고요

평생 한 자세로 견디는 자의

고요를 먹고 자라는 수직

 

내 고요가 팽창할 때

배관 속 고요를 만난다 부리를 세워

허공에 말을 거는 새처럼

 

고요한 귀에 들려주는 배관의 노래

아무도 귀를 열지 않으면 어쩌나?

천 길 낭떠러지 아득한 그곳을 또 다녀오나?

고요를 삼켜 또 수직을 살찌우나?

 

귀향한 내 고요처럼

외벽에 매달린 곰팡이들

벽을 뚫어 어긋난 관을 이어야합니다,

관리실 직원이 망치를 휘두르자

고요가 쏟아진다

 

고요가 돌처럼 단단해지면

닿는 모든 소리는 울음이 된다

빗물이거나 오수이거나 똥물일지라도

스치는 순간 가파른 공명이 발생한다

 

이상한 울음이 뼈에 전해지면

입술을 깨물던 처음의 고요가 아, 아, 아, 깨어나고

고요에 들러붙은 울음들 일시에

아! 아!! 아!!!……

 

오래된 고요가

울음이 되어 겨우 몸을 빠져나온다

 

                                   계간 <애지> 2015년 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