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및 리뷰

나는 누군가의지주(地主)이다/ 차주일

기호의 순수 2014. 7. 15. 12:46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이다
    — 늙은 삼각형의 공식

 

                           차주일

 


  땀내 한 다랑이 경작하는 농사꾼과 악수할 때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악력(握力)은 삼각형의 높이이다
  얼굴이 경작하는 주름의 꼭짓점마다 땀방울이 열려 있다
  땀이 늙은이 걸음처럼 느릿느릿 흘러내리는 건
  얼굴에서 발까지 선분을 그어 품의 높이를 구하기 때문
  소금기를 남기며 닳는 땀방울 자국을
  사람의 약력(略歷)으로 출토해도 되나?
  겨우내 무너진 밭두렁을 족장(足掌) 수로 재며
  뙈기밭의 넓이를 구하던 이 허리 굽은 사내는 나의 첫 삼각형
  등 굽혀 만든 앞품을 내 등에 밀착하고
  새끼가 품의 넓이란 것 스스로 풀이하게 한 삼각형 공식
  어린 손등에 손바닥을 밀착하여
  까칠까칠한 수많은 꼭짓점을 별자리로 생각하게 한
  엄지와 검지를 밑변과 빗변처럼 괴게 하여
  절대 쓰러지지 않는 높이로 연필 거머쥐게 하고
  내 이름자를 새 별자리 그리듯 처음 쓰게 한
  피라미드처럼 몰락해버린 한 사내의 악력은, 왜 지금껏
  사내의 품을 땀내로 환산하게 하는가
  늙은 삼각형이 악수한 손을 놓지 않고 흔들어댄다
  내 팔꿈치가 농사꾼의 허리 각도를 이해할 때
  내 몸 통각점들이 지워진 선분을 다시 긋는다
  내 이름자 획순으로 흐트러진 사내의 골격이 내 몸속에서 읽힐 때
  연필심에 묻혔던 침만큼의 땀이 손바닥에 어린다
  내 눈은 왜 땀에 젖은 손바닥을 꼭짓점으로 이해하는가
  젖은 눈은 왜 나를 타인 되게 하는가
  내가 누군가의 눈으로
  그의 얼굴과 손과 발 세 변의 길이를 잰다
  내가 누군가의 눈을 껌벅이며 곤혹스러워할 때
  삼각형의 높이를 잴 눈물이 제자리에서 마른다
  내가 이 점(點)에 염기를 경작하여
  누군가의 발까지 이르는 높이 하나 짠내 나게 그으면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가 된다

  

 

  작품상 추천 사유/ 계간<시산맥> 2014년 봄호


  농사꾼의 손은 그 어떤 직업보다 투박하다. 농사는 대부분 손으로 해낸다. 거칠고 앙상한

농사꾼과 악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악력(握力)이 얼마나 강한지를. 화자는 자식을 키

워내는 허리 굽은 세상의 아버지들을 삼각형이라 명명한다. 농사처럼 힘든 육체노동을 해온

아버지의 굽은 허리는 "나의 첫 삼각형"이다. 허리의 굽은 각도가 이뤄내는 빗변과, 땅을 딛

고 선 발과, 가슴이 향하는 자식이라는 지점을 연결하는 수만 가지 형상의 아버지들.
  화자는 농사꾼과의 우연한 악수가 촉발시킨 세상의 아버지들에 대해 말한다. 아들의 “어린

손등에 손바닥을 밀착하여”, “엄지와 검지를 밑변과 빗변처럼 괴게 하여/ 절대 쓰러지지 않는

높이로 연필 거머쥐게 하는”, 하지만 지금은 “피라미드처럼 몰락해버린” 아버지의 악력에 대해,

그리하여 사내의 품을 땀내로 환산하게 된 내력에 대해 구체적 경험의 이미지로 독자를 납득시

킨다. 늙은 삼각형이 흔들어대는 허리의 각도를 이해할 때, 비로소 몸속의 통각점들이 되살아난

다는 사실을. 내 이름자 획순으로 흐트러진 아버지의 골격이 내 몸속에서 읽힌다는 사실을.
  시는 언어와의 싸움이다. 구체성과 사실성을 바탕으로 형식과 내용, 언어와 사유를 어떻게 배

치하고 충돌시키는가에 따라 발생되거나 환기되는 효과를 노린다. 위 시는 악수하는 순간 전해

오는 악력을 통해 늙은 아버지를 이끌어내고, 굽은 허리와 자식과의 상관관계를 삼각형이라는

기호를 통해 구체화시킴으로써 놀라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니까 자식은 아버지의 땀을 받아먹은 지주(地主)가 되는 셈이다. 평범한 진리가 낯선 삼각

형과 진솔한 고백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새롭게 존재를 인식하게 한다. 몸에 새겨진 통각점이 살

아난다. 뭉클함에 한동안 먹먹해진다.     /이미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