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분꽃 피는 골목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4. 3. 6. 22:40
분꽃 피는 골목
이미산
분홍색 예쁜데, 침을 뱉으며
킬 힐의 소녀가 말했다
노란색 섹시하잖아, 가죽 재킷의
소년이 타는 담배꽁초를 던졌다
쓰레기 더미에 핀 꽃이 손을 흔들었다
껌을 씹는 소녀의 입술이 반짝거렸다
골목이 흔들리지 않을 땐 고요가 흔들렸다
너는 꽃이야, 꽃이란다, 발등을 간질이며
어둠이 내려앉았다
마루에 누워 바라보던 낡은 별이 다녀갔다
먼 곳에서 희미한 웃음소리 들려왔다
먼 곳의 웃음을 따라 소녀는 소리 내어
웃었다 꽃잎 위에 몇 번 더 침을 뱉었다 사투리처럼
억센 잎사귀들이 웃음을 받아 허공으로 튕겨
올렸다 재수 없어, 팔뚝에 그어지는 별똥별처럼
소녀는 손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발랐다
그림자들이 비틀거리며 뜨거운 오줌을 퍼부었다
웃음을 만들어내듯 꽃은 허리를 흔들었다
밤이 왔으므로 다시 꽃이 되었다
가로등이 꽃을 등진 채 깨어있었다 졸음이 밀려오는
꽃잎 위로 새벽이 미열처럼 내려앉았다
웹진 <시인광장>, 2014년 3월호 수록 -부분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