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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방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3. 12. 26. 14:37

남자의 방                 

                   이미산 

 

  

사내의 거울 속에 보름달 홀로 떠있다

달의 이마를 가르는 실금들 사내를 찾아나선다

  

출렁이는 소음 사이로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습기 찬 여자들의 목소리

사내의 머리칼은 실제보다 빛난다 

 

달이 빙긋, 머리칼이 찰랑,

그러나 재빨리 복귀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겨우 도착한 여자의 창문

사내가 숨을 고르며 휘파람을 분다

거울 속에서 환해지는 달 

 

그러니까 달빛은 허황된 소문이거나 가능성 있는 추론

두뇌를 관통하는 신경다발의 오류이거나 불현듯 심장을 찌르는 기억의 줄기

이마를 쓰다듬는 식어버린 손바닥  

 

여자와 침대 위를 뒹굴 때

쩍쩍 갈라지는 거울 속 백 개 천 개 분열하는 이마

악착스레 매달리는 달빛  

 

사내는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

 

                      계간 <다시올 문학> 2013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