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위층 사는 코끼리씨 / 송찬호
기호의 순수
2013. 1. 31. 23:57
위층 사는 코끼리씨
송찬호
우리 바로 위층에 코끼리가 살고 있다
그는 늘 부르릉거린다
지붕을 빻아 이윤을 만들고
좌변기에 걸터앉아
이 도시의 사막을 건너곤 한다
코끼리의 코는 짧다
쓸모 없는 건 퇴화하게 마련이니,
여자들은 심플한 그의 코를
핸드백 속에 넣어 다니곤 한다
최근 그는 의자 하나를 고용한 적이 있다
거대한 대륙 같은,
굳어가는 그의 엉덩짝을 앉히기 위해
그는 발목에 시계를 차고 다닌다
그가 아무리 조심히 걷는다지만
아래층 사람들은 매일 아침 그들을
깨우는 알람 시계 소리를 듣는다
그는 아래층에 내려와본 적이 없다
가끔씩 그는 이곳 휴양지엘
가보고 싶다고 편지에 쓰곤 한다
그의 배변 습관은 늘 요란하다
고통스럽게 그는 한 무더기의 똥을 싸놓는다
그리고 변기 뚜겅을 닫는다
아침마다 변기 속 그만한 크기의 작은 신문사를
시집 <십년 동안의 빈 의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