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멍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2. 6. 25. 01:09
멍
이미산
빈 방에 누워 오랫동안 벼린
생각의 날 하나를 만지작거린다
나를 어디로 퍼 나르는 듯
유리창이 빤히 들여다본다
창문 너머엔 수많은 지붕이 있고
하나의 지붕은 또 몇 개의 창문을 매달고
나는 지붕 하나의 내부이자 창문 하나의 대상
때론 의연함으로 회자되는
창문이라는 지붕, 지붕이라는 창문
뼈 속까지 들추거나 뼈 속부터 감추려는 서로 다른 신념처럼
오른손의 분주함에 깊어지는 왼손의 외로움처럼
가을이 해일처럼 몰려오고
겹겹의 내부가 동시에 펼쳐지고
멍은 바람 없이도 펄럭이는 빨래 같은 것
오랜 불면이 낳은 고백 같은 것
귀향에 목마른 자의 환영 같은 것
완고한 지붕과 유순한 창문의 도식을 허물며
눈가에 멍 빛 선명한 아이가 씹는 풍선껌처럼
창문의 결 하나를 더듬거리며
풍경으로 돌아가는 시간의 기침소리 듣는다
노을 등지고 선 그림자
늘어진 귀를 빠져나온다
계간 <제3의 문학> 가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