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부드러워진다는 것 / 박연숙

기호의 순수 2012. 5. 18. 09:43

부드러워진다는 것

                             박연숙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스멀스멀 비 내리는 풍경이 이해될까요?

나는 차츰 나를 무서워하기 시작해요

이완을 되풀이하는

나의 바깥은 미끈미끈한 하늘을 마주하죠

등 뒤엔 한 떼의 날개,

이것은 더러운 것인가요?

음모처럼 치부를 읽어내는

미지근한 입속

지루한 천사처럼 환호를 보내요

물기 많은 손톱 밑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드러워서 적막한 몸을 보았거든요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잠*

날개들이 둘러앉는 식탁 같은 것들 말이에요

부푸는 잠 속으로

걸어와 나의 내부를 뒤적거리는

당신의 입술은 나를 좋아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스멀거리는 이 창문을 이해할까요?

 

 

              * 윤동주 「별 헤는 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