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트럭과 트릭 사이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1. 12. 20. 15:23
트럭과 트릭 사이
이미산
잘 살 겁니다 두고 보세요
바퀴가 지나간 흔적은 이내 지워지고
사내의 오후가 불확실한 외투를 입고 언덕을 오를 때
억세다고 볼 수 없는 팔뚝과 확신을 먹고 자란 힘줄이 느린
걸음에 맞춰 바퀴의 무늬로 완성될 때
비가 오려나
누군가 흘리는 말이 위안처럼 발목을 잡을 때
무늬와 무게가 당신과 나처럼 스치는 방식이라면
산책의 상징은 풍부해질 것이다
바퀴와 발전이 길과 산책처럼 다정한 관계라면
사내의 걸음은 행복한 바퀴일 것이다
한적한 지방도로 사라진 트럭의 숨소리가 여운처럼 떠있는
구멍가게 여자의 파리채가 평상을 빙빙 돌아 누군가의 이마에
핏자국 같은 꽃을 피우는
길 위의 꽃들은 바퀴의 습성을 익혔으므로 트럭이 달려오는 반대
쪽으로 서둘러 몸의 중심을 이동할 줄 아는
스스로 키운 결의를 짓밟고 한순간 달아나는 욕설도 있다
평생의 무늬를 허공에 걸어두고 몰래 사라지는 바퀴도 있다
비가 올지도 몰라
끊는 물처럼 뜨거운 무늬를 낳는 중얼거림도 있다
길 잃은 바람에 매달려 활짝 피어나는 꽃도 있다
계간 『시와 정신』, 2011년 겨울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