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휴 셀윈 모벌리 / 에즈라 파운드

기호의 순수 2011. 11. 15. 16:17

 

 

      휴 셀윈 모벌리

                                         에즈라 파운드

 

 

  1

  스스로 무덤을 선택하는 에즈라 파운드의 송시(頌詩) 

 

 

  3년 동안

  그의 시대와는 동떨어져

  그는 시라는 죽은 예술을 소생시키려 애썼네,

  낡은 감각의 <장엄>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건 처음부터가 잘못이었지―――

 

  아니야, 그가 태어난 곳이 반쯤은

  야만적인 나라

  시대에 뒤떨어진 건 그럴 수밖에

  도토리 알에서 백합꽃을 피우려 굳게 마음 먹은

  카파뉴스 아니, 가짜 미끼에 걸려드는 숭어

 

  「우리는 트로이 넓은 땅의

  모든 힘든 일을 알고 있지요」

  바위 가까이로 항로(航路)를 잡아

  클어막지 않은 귀로 그 노래를 듣고,

  그래서 그 해에 그는

  거친 바다에 사로잡혔네.

 

  그의 진정한 페넬로페는 플로베르,

  완고한 섬나라에서 낚시나 하며,

  마녀 키르케의 우아한 머리털을

  해시계에 새겨진 격언보다 더

  열심히 바라보았지.

 

  <사건들의 행진>에는 아랑곳 않고

  <그가 서른 되던 해>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그는 사라져갔네.

  뮤즈의 영광에 아무 보탬도 못 되었던 생애.

 

 

 

  2

 

  시대가 요구하는 영상은

  가속도로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무대 위에나 올려놓기에 적당한 것.

  고전적 우아함은 어떻든 아니야.

 

  아니야, 확실히 아니지.

  내면을 응시하는 모호한 몽상,

  풀어서 다시 쓴 고전보다는

  차라리 허위가 더 낫지.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주로

  즉석에서 만드는 석고상이나

  값싼 통속영화일 뿐

  설화 석고나 운(韻)이 맞는 <조각 작품>은

  아니지, 분명 아니지.

 

 

 

  3

 

  장미꽃이나 값싼 야회복 따위가

  코스의 최고급 모슬린을 밀어내고,

  자동 피아노가 사포의 칠현금에

  <대신 들어앉는다.>

 

  그리스도가 디오니소스 뒤를 따르고

  성기(性器) 숭배와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음식은

  단식의 수척함에 길을 비키네.

  캘리밴은 에어리얼을 쫓아버리고.

 

  세상만사가 덧없는 물결이라고

  현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하나

  번지르한 싸구려들은

  우리 시대보다 더 영원하리.

 

  기독교의 아름다움조차

  사모트라케를 따라 쇠퇴하네

  우리는 본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장터에서 결정되는 광경을.

 

  우리에게 목신(牧神)의 고기는 없고

  성자(聖者)의 선견지명도 없네.

  성찬예식 대신 신문을,

  할례의식 대신엔 선거권이 있을 뿐.

 

  법으로야 만인이 평등하지.

  피시스트라투스가 없으니,

  우리가 선택한 통치자는

  악당이거나 환관.

 

  오 현명한 아폴론 신이여, 저는

  어떤 신, 어떤 인간, 또는 어떤 영웅에게

  깡통의 화관(花冠)을 바치리이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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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닉슨 氏

 

 

  크림색을 입힌

  호화로운 요트에 앉아

  닉슨 씨는 내게 다정하게 충고했지.

  뒤떨어질 염려 없이 출세하는 길을.

 「비평가를 신중히 고려하라」―――

 

 「나도 처음에는

  자네처럼 가난했었네.

  나중엔 인세가 올랐으나

  처음에는 겨우 50파운드」

  그렇게 닉슨 씨는 말했지.

 「나처럼 칼럼을 계약하게,―――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더라도」

 

 「비평가에게 기름칠을 하게」―――

  18개월 만에 나는

  50에서 300으로 값이 올랐네.

 「처치 곤란의 고집쟁이는

  던더스 박사뿐이었네」

 

 「내 작품을 팔 목적 없이는

  남의 평을 한 적이 없네」

 「문학에서는 넌지시

  돌려 말하는 것처럼 좋은 게 없네」

 「누구나 하기 쉬운 일이고」

 「더구나 눈으로 보기에

  걸작을 구별할 도리가 없으니」

 「시는 집어치워.

  시에는 아무 이익도 없네」

 

  블러램의 친구 하나가 내게

  똑같은 충고를 한 일 있지.

  「가시 돋친 채찍을 하지 말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여라.

  <90년대>도 너처럼 놀다

  죽어버렸어, 아무 이익이 없네」

 

 

 

  10

 

 

  나지막한 초가지붕 밑에

  몸을 의탁한 예술가는

  금전도 명예도 없이

  작품만 다듬고 있네.

 

  마침내 세파를 떠나

  자연에 몸을 맡겨

  소박한 소녀와 살며

  재능을 갈고 닦아

  흙만이 그의 슬픔을 달래주네.

 

  비속과 경쟁에서 도피한

  안식처의 지붕은

  짚 새로 비가 스며도

  그는 신선한 별미를 대접하네.

  삐걱기리는 문 안에서.

 

 

                           파운드 시집,『지하철 정거장에서』, 정규웅 옮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