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달아나는 단추들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1. 10. 26. 20:43
달아나는 단추들
이미산
무심히 단추를 채우는 일
단추만한 기척이 나의 손끝을 다녀가는 일
홀로 달아올랐다 홀로 쭈그러드는 구멍의 일상 같은
단정하게 단추를 채우고
다정한 척 다녀오는 수많은 그곳들
모든 무사하지 않은 이별처럼 눈을 뜬 채
누군가 손끝에 매달아 단추처럼 흔든다
발견하는 빈자리
통과한 사실로 기억되는 당신과
머문 순간으로 기억되는 나 사이
손등에 따개비처럼 달라붙어 견고한 터를 세우는 사람과
찌그러진 달처럼 정든 골목을 서둘러 빠져나가는 사람 사이
무심한 바람이 오래된 단추의 행방을 부려놓을 때
구멍 속으로 텅 빈 들판이 끝도 없이 밀려들 때
손끝마다 매달려 울고 있는 단추만한 동그라미들
나란히 묶인 채 바깥으로 기울어진 단추와
종일 단추방향으로 갸우뚱한 구멍 사이
단추처럼 단단해지는 이별과
기꺼이 헐거워지는 껍질 사이
계간 <애지> 2011년 겨울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