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붉은 꽃말 / 정수경

기호의 순수 2011. 9. 29. 20:48

 

 

  붉은 꽃말

                               정수경

 

 

유월에 당신은

붉은 장미를 가장한 말의 이면에 대해 연연해서는 안된다

 

잘 맞는 옷을 입은 말은

어이없이 저쪽 담장에서 되돌아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발설되지 못하고 입술에 선명하게 남은

꽃말의 보송한 날개에도 때로는 가시가 돋는다

 

그러나 말의 상처를 건드리는 일은 용납되지 않으므로

물 위에서 지워진 새의 발자국처럼 가시는 부드러워져야 한다

 

뿌리 없이 무성한 말은

투명한 물방울무늬 속으로 들어가는 저녁 무렵을 떠올리고

 

말의 잔치는 향기로운 꽃의 나날

검은 해가 꽃 피는 시절의 향기를 거두어 쓸쓸히 서쪽으로 쓸어간다

 

입술을 기억하는 핏빛 말들이여, 허공을 떠돌다 떠돌다

적당히 무른 곳을 찾아 밑줄 아래 그만 앉아 있으라

 

바람이 수시로 말의 그늘을 흔들고

구름은 발효된 침묵의 비를 뿌리며 지나가느니

 

시침과 분침이 유행처럼 지나가는 길목

어느 심장을 지나온 꽃말이 장미의 種을 흉내 내고 있다

 

                          격월간 『시를사랑하는사람들』, 9-10월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