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11시 11분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1. 5. 11. 18:57
11시 11분
이미산
버스종점 외벽의 시계는 언제나 11시 11분,
당신과 내가 무관하게 스쳐간다
버스와 버스가 홀로 서 있다
나무는 날씨와 상관없이 그날의 인사법을 익힌다
이파리를 통과한 바람이 어둠의 주소를 웅얼거린다
나의 햇빛은 事實的인 햇빛과 다르다
뜨거움은 내가 나에게 좀 더 냉혹해지려는 것이고
따뜻함은 반복되는 시간에 좀 더 무심해지려는 것이다
나와 햇빛은 서로의 事實을 긴밀히 표절한다
혁명적 운명론자들은 건물 담장 계단 같은
그늘이 깊어지길 기다리는 것들에게 절대적 경의를 표한다
바람이, 계단이 된 발자국들 불러내는 동안
나무는, 바람이 남기고 간 껍질에서 한 그림자를
일으켜세운다
밤과 낮, 오전과 오후가 무관해진 바퀴들이
녹슨 뼈에 홀쭉한 정신을 감고 또 감는다
마지막 버스의 경적이
운명론자들의 기울어진 어깨를 툭, 쳤다
움직이는 것들 시간 너머로 몸을 꽁꽁 숨겼다
11시 11분 홀로 종점을 지켜낸다
계간 <다시올문학> 2011년 여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