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오로라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11. 3. 17. 18:20

 

오로라*

                    이미산

 

 

 

 

사막영혼을 지닌 짐승들이

모래알처럼 잘게 부순 마음을 내 창가에 놓아두는 새벽

 

어린 여우가 새벽이슬로 참아온 갈증을 해결할 때

그것은 어디에도 고백할 수 없는 눈물

 

달이 이마에 고인 눈물 지상으로 밀어낼 때

다육이 손톱이 붉게 물든다

 

누군가 제 겨드랑이 속으로 손을 밀어 넣을 때

나는 눈 먼 어미 되어 길 잃은 바람에게 젖을 물린다

 

지상에 닿기 위해 먼 길 달려오는 빛들

나는 달빛 한 줄기 당겨와 어느 생에선가 마주친

동공 깊은 사내의 어깨에 밴 눈물냄새를 맡는다

 

눈물은 여우 눈썹 위로 내려앉는 무심한 시간 같은 것

다육이는 웅크려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나는 저만치 사막을 걸어가는 발자국 쪽으로 귀를 열고

일상의 파장들, 스스로를 적시는 무수한 발자국들의 흔들림

반복되는 그 움직임으로 내 귀는 뜨거워지고

 

달빛이 내 몸에 감겨들 때

이것은 어느 사막의 오래된 새벽일까

 

내 손가락이 다육이 가슴에 닿는다

눈물이 사막의 라인처럼 단정해졌다

헛되지 않게 사용되는 눈물은 매혹적이다

 

 

* 다육식물의 한 종류. 혹은 '새벽'이라는 뜻의 라틴어.

 

                                                                       <현대시> 2011년 4월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