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로커 / 이장욱
코인로커
이장욱
두 시간 동안 코인로커 속의 어둠에 몰두했다.
어디에도 빈틈이 없는 세계는 서류와 비슷한가.
사과와 비슷한가.
사각형인가. 얼마나 붉은가.
어둠은 소중한 것과 훔친 것을 구분하지 않고
무심한 것과 슬픈 것을 가리지 않고
죽은 사람을 움직여서
생각하는 사람에게 겹쳐놓는다.
모둥이마다 낯선 얼굴이 서 있는 밤
어둠의 입장에서 보면 목적지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계단 쪽일까. 비상구 쪽일까.
혹은 환승역.
오늘도 사람들에게는 자꾸 맡길 것이 생긴다.
의심스러운 봉투와 검은 가방.
음식물.
시신의 일부
코인로커 속에서는 어둠이 모든 것을 만들지만
모든 것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터널 속을 달리는 나와 그대와 신문들
오해와 농담과 말다툼들.
어디에도 빈틈이 없는 세계란 그러니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나
사망신고서
손가락이 들어 있는 가방의 모습
나는 어둠 자체를 발견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코인로커 속에서 가장 슬픈 자세는 무엇일까.
지금은 붉은 사과가 무릎을 모은 채
어둠에 몰두하고 있다.
캄캄해지는 것은
사과인가.
목적지인가.
누군가 코인로커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사각형의 어둠 속으로 손을 뻗어
물건을 회수해 간다.
<현대시학> 2010. 4월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