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두 단어의 세계 / 기혁

기호의 순수 2010. 4. 5. 13:44

 

 

    두 단어의 세계

 

                                                  기혁

 

 

  에베레스트경이 초모랑마를 발견한 뒤에도

  늘어난 건 몇 방울의 잉크

  핼리혜성이나 B612가 발견된 다음에도

  몇 가지 수학공식이 늘어났을 뿐

  노트 정리를 잘하면

  곳곳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름 붙이지 못한 구십 퍼센트 바다생물도

  약간의 여백이면 충분해

  '모든'이라는 단어가 미래를 예언하고

  조물주처럼 보살펴주고 있기에.

  몇 번씩 전쟁을 치렀지만

  지우개가루엔 흔적이 남지 않는다.

  반듯하게 접으면 작고 가벼워

  죽은 친구의 이름이나

  낯선 전화번호 따위가 적혀 있는 지구

  가끔씩 글자를 혼동한 사람들은

  바람과 지하철의 공통점을 이야기한다.

  이유 없이 울다가, 웃기도 한다.

  '우리'라는 단어가 처음 발견되던 날,

  외계인이 쓴 방명록 같았다는 아르디의 소감

  그녀의 노트엔 보탤 수 없는 유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