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모독 / 이병률
기호의 순수
2010. 2. 25. 10:37
모독
이병률
내가 당신을 먹는 풍습에 관하여
할 말이 있다면 당신은 해보라
내가 끔벅끔벅하는 것은
감정을 연장하자는 것도 아니고
소리를 치지 못해서도 아니다
암굴로 데려와 맨발로 당신을 먹는 것은
극지에 모아둔 당신을 일으켜 살기를 채우는 것
깜깜한 당신의 시간을 갈아엎는 것은
환멸의 뼈를 발라 거는 것
먹으면 죽어서 달의 빛이 되고
당신의 비명으로 출처가 남겠지만
당신은 낡아가야 하리라
너무 많은 절박조차도 마르게 했으므로
그러나 끝도 없이 고단했던 당신의 몸
당신을 피할 수는 없었으리라
존재하느라 몸을 떨어 감정을 파먹었던 당신을
당신이 숱하게 피를 먹던 기록을 지우는 것이니
내가 이리도 한사코 먹겠다는 것은 나란히 소멸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찢기면서도 그리 알라
시집, <찬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