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아는 여자 (외2편) / 최호일
아는 여자 (외2편)
최호일
모르는 여자가 아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 몸에는 광화문 연가가 저장돼 있다
또 다른 모르는 여자는 구멍 난 가슴을 부르는데
너무 솔직한 치마를 입고 있다 저쪽의
바람이 불어오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지하에서
노래가 끝날 무렵 누군가 술잔을
잘못 건드렸는지 세상 밖으로 넘어지고 별이 흔들린다
밤이 젖었네 미안해요
유리잔에 금이 자라기 시작하고
바닥이 멀리 갈라져 나머지 시간과 부르던 노래와 가사까지
지진이다 하면서 땅속에 들어가 백 년 동안 묻혀 있다면
저들은 아는 여자가 될까
그곳에 가을이 오고 아는 여자가 떠난다고 해도
밖에는 비가 내리기도 할 것인데
노래가 땅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어느 날 구조가 되어도 모르는 새처럼
우리는 지상의 노래를 다시 부르지 못할 것이다
—《시안詩眼》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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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신데렐라
바퀴가 보이는 호박을 타고 가는 밤
명왕성 불빛이 켜지고 마차가 하늘 있는 쪽으로 달린다
제 몸이 어른처럼 싫어질 때
어떤 아이들은 달빛에 빠진 음악을 건져 먹고 있다
달즙은 빨아먹을수록 어두워진다
신데렐라는 그곳에서 겨울나비처럼 죽었고
나비는 죽음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날아오르고 있다
어둠은 쉽게 깨져서 발을 찌르기 때문에
유리구두는 밤에 춤추기 적합한 신발
이름표를 바꾸어 달지 말아요 나는 동화 나라의 입주민
신하들은 사용이 금지된 구름을 띄우고
체계적이고 다양한 기쁨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나는 유리창 같은 당신을 모른다
불빛은 어두운 부분을 골라서 바라보고 있지만
몸에서 빠져 나간 담배 연기처럼 당신의 화장은 관념적이고
밤은 독극물을 마신 것처럼 관능적이다
이제 춤을 밖으로 내 보낼까요 당신
내 몸이 빠져 나오면 공주가 될 수 있나요
그대가 그대 몸을 잠시 바꿔 입고 나온 것처럼
—《시와 반시》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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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여자
이 동네에는 바라볼 때만 지나가는 옥탑방 구름들이 살고
7월의 여자가 있지
그녀는 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얼굴로 시간을 널고 있지
저 악보는 6월이 찢어 놓은 바람의 달력 같다
빨래는 그녀를 안는 자세로 두 팔을 벌리고
축축해진 그림자를 조금씩 꺼내 먹고 있다
어쩌다 세상을 뒤집어 입고 있는 그림자들
하늘 저쪽을 바라보다 마주치면
동전을 줍는 척 고개를 숙이고
또 마주치면 떨어진 동전을 두 개 줍는 시늉을 한다
난간의 용도는 다양해서
스티로폼 박스가 위험하게 앉아 있기에 적합하다
저곳은 흙냄새를 맡아도 어떤 눈물이 자란다 꽃이 피면
동전이 굴러가는 방향으로
파꽃을 핑계 삼아 어느 날은 오래 어두워질 수 있겠다
아픔은 저마다 색다른 의상을 입고 있지만
푸르게 난간을 넘어오는 저 여자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았기 때문에
이 계절은 소리가 지워진 채 떠내려가는데, 거기 가면
늦게 도착한 편지처럼
7월의 여자들만 사는 섬이 나올지 모른다.
—《詩로 여는 세상》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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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 1958년 충남 서천 출생. 200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