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근황 / 정병근

기호의 순수 2009. 6. 25. 01:24

 

 

근황

 

 

                    정병근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이 없었다

잃어버리기 위해 라이터를 샀다

그 많던 볼펜의 행방이 묘연했다

겨울은 아는데 여름은 모른다고 했다

카페 봄에 가서 가을을 물었다

전화는 선택적으로 묵살되었고

간판들이 일부일처를 비웃으며 지나갔다

뒤따라 온 자책과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부재를 알리는 약속이 도착했다

나를 베어 문 그의 웃음이 재빨리

영정 사진 속으로 들어갔다

흩어지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진동이나 문자는 종종 그들의 명분이 되었다

화장실에서 깨진 거울이 울고 있었다

나보다 더 많이 나를 아는 너와

너보다 더 많이 너를 아는 내가

박장대소하며 풍자에 몰두하는 동안

등 돌린 말들이 서로를 누설했다

흥건한 흉몽의 문을 두드리며

나라는 소문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현대시학》2008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