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 감독
- 리들리 스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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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시뮬라크르에 관한, 그리고 모방에 관한 영화이다. 인간은 모방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흉내낸다. 토끼를 보고 토끼 그림을 그리며, 소녀를 보고 소녀의 인형을 만든다. 새소리를 듣고 클라리넷 선율을 만들어내고, 거미를 보고 우주선을 만들어 낸다. 존재의 끊임없는 증식, 유사성의 끊임없는 계열, 그러나 원본에 완전히 합치하는 복사본은 없고 모방은 늘 불완전한 상태로 머문다. 그러나 이카로스의 운명을 짊어진 인간은 모방을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시도하는 모방들 중 가장 극적인 모방은 자기 자신의 모방이다...........
이 영화는 또한 始源에 관한, 그리고 죽음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복제 인간들은 식민지 별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인간들을 죽인다. 그리고 그들을 만들어낸 타이렐 회사에 침입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원, 자신들을 만들어낸 <창조주>를 보고자 한다. 어떤 이유도 모른 채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들의 부질없는 갈망. 복제 인간은 인간의 비극을 되풀이한다. 시원에의 갈망은 죽음을 응시했을 때의 불안으로부터 나온다. 죽음의 미소, 無의 눈빛, 근원적 불안에 처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시원을 향한다. 죽음에의 응시와 시원에의 갈망을 통해 복제 인간은 인간의 고뇌, 즉 정체성에의 갈망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그러나 복제 인간이 인간에 가장 가까이 근접하는 것은 사랑할 때이다. 사랑은 유기체에게 해롭다. 토끼에게 연민을 느끼는 군인은 총알을 맞을 수밖에 없다. 강하고 독한 자가 선량하고 부드러운 자를 지배한다. 이것이 우주의 차가운 법칙이다. 사랑은 이 진화론적 법칙을 벗어난다. 사랑은 생명의 보존과 확장이라는 우주론적 법칙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을 연다. 복제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는 단순한 유기체임을 넘어 이 새로운 차원에 동참한다. 레이첼은 인간인가 아닌가? 데커드와의 사랑을 통해 레이첼은 인간이 된다. 데커드와 손을 잡고 입맞출 때,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 레이첼은 기계와 인간 사이에 그어진 선을 넘어선다. 피그말리온의 꿈이 실현된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와 달리 우리는 인간을 이렇게 규정해야 하리라. 우리는 사랑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그러나 데커드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남아 있다. 레이첼과의 사랑이. 복제 인간인 경찰은 레이첼을 죽이지 않는다. 종이로 접은 유니콘을 남겨놓았을 뿐이다. 그것이 마치 소외와 복제의 시대에 남겨진 마지막 희망인 듯이.
- 이정우 지음, <인간의 얼굴>-탈주와 희귀사이에서, 민음사, 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