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파란 대문 / 신지혜

기호의 순수 2009. 4. 9. 12:20

 

    파란 대문

 

                                    신지혜

 

 

 

 

 그때, 철판같이 견고한 어둠 한 장이 내렸다

엄마가 내게 나직이 말했다 얘야

누구든지 자기 안에 파란 대문이 있단다 네 안을 들여다보렴.

나는 내 안에 얼굴을 파묻고 날 들여다본다

가만히 바라보니, 파란 대문 하나가 떡 버티고 있었다

흔들어보아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 문이 잠겨있어요 열쇠가 없어요

걱정말아라 네 마음을 그 열쇠구멍에 꽂고 힘껏 비틀어보렴.




그러나 나는 너무 녹슬었어요 엄마, 온통 붉은 꽃 투성인걸요

아니란다 이 세상에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는 거란다

보거라 저 공중에 네 숨결마저도 아름다운 무늬꽃을 피우고 있지

과연 바라보니, 내 숨결의 물빛 붓꽃이 투명한 공기알을 잔잔히 흔들고 있었다




나는 굳게 닫힌 파란 대문의 열쇠구멍에 나의

마음을 꽂고는 힘껏 비틀었다 그러자 저편

시간의 태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내 마음의

경계선이 모두 지워져버렸고 내 생각의 안팎이 무너져버렸다

촘촘한 두려움의 경계가 훨훨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파란 대문은 내 안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