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폐가 / 안명옥
기호의 순수
2009. 2. 3. 00:32
폐가
안명옥
내 몸은 때때로 불덩이다
내 몸의 지아비인 그는 내 안의 집으로 들어온다 그는 외로움이다 춤이다 바람이다
그는 곧잘 세상의 표면에서 미끄러진다 유예된다 그는 어둠이다 좀처럼 다시 빛 속으로
외출하지 않는다 햇살은 늘 그를 비껴가고 그는 점점 검은 빈혈을 앓는다 온몸을
던져 밤을 읽고 이윽고 밤의 중심이 된다
나는 그를 완전히 해독할 수 없다 나는 돌연 내 속의 뜨거운 말을 품고 그에게 다가가
안드로메다의 표정으로 머뭇거리기도 하고 서성대기도 한다 그러다 한순간 그는 햇빛 모양의 환한 기둥 하나를 내 안에서 뽑아낸다 아 아, 이 통증
격렬한 통증 뒤의 나는, 그가 세상에 버린 블랙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