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나쁜 소년이 서 있다 / 허연

기호의 순수 2008. 12. 29. 22:13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

  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너무나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

  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은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

  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었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

  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