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 질 때 / 황규관
잎사귀 질 때 (외 1편)
황규관
사랑은, 가지를 떠난
잎사귀 한 장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거처를 버렸으므로
혼돈을 택했으므로
솟구치는 기쁨이여 고독이여
먼 별에까지 미치는 파문이여
당신을 안았을 때
내 심장은 어떤 언어로 이글거렸을까
결국 나락에 눕게 되겠지만
그곳에 이르는 먼 여정이 축복이든 저주이든
내 生은
바람 한 자락에도 나부낄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신을 향한 내 폭발은 자꾸 유예시키고 싶었다
잔해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보석은 있겠지만
위험수위 직전의 목마름으로
내 껍데기를 다 태우고 싶었던 것이다
잎사귀 한 장 드디어 저 끝에 다다라도
그 짧았던 시간이 내게는 영원일 것이므로
사랑은, 당신의 배경으로 흐르는
물줄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이지 않는 욕망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신을, 당신을 탐하다가
마음의 벽돌만 산산이 깨지고 나서
-------------------------------------------------
철산동 우체국
내가 너에게 편지 부치러 갈 때
한가한 우체국 입구에 나와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인사하던 우체국장 아저씨
꼭 나의 비밀을 아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뚱뚱한 우체국 아가씨가 볼까봐
얼른 편지를 부치고,
그리고 얼마나 후회했던가
내 뜨거운 편지가
지구를 삼천댓 바퀴 돌다 도착했으면 싶었다
사랑한다는 구절에 세월의 곰팡이가 슨 채
이쁘게 늙은 너의 손주 손에 배달되어
노인대학 야유회 간 너를 기다리든지, 아니면
먼지가 더께로 낀 너의 창문을 기웃거리다
수취인 불명이 찍혀
바람이 내 무덤 앞 넓적바위에
일몰 직전 햇살처럼 쓸쓸히 반송해주길
나는 정말 얼마나 꿈꾸었던가
셔터가 내려진 철산3동 우체국
어둠 속에서 넋없이 바라보다 돌아선 날
내 방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십억 광년쯤 떨어진 별에 들렀다 갈
편지를, 너에게 쓰기로 했다
---------------------
황규관 / 1968년 전주 출생. 1993년 전태일 문학상에 시 「지리산에서」 외 9편 당선. 시집
『철산동 우체국』『물은 제 길을 간다』『패배는 나의 힘』.